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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시리즈/1회차]: <설국>의 저자를 읽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by Forever_Student 202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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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의 풍경

1. 어색한 일본 문학 도전기

 나는 일본 고전 문학에 익숙하지 않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은 자주 접해보았지만, 일본 문학은 뭔가 낯선 느낌이었다. 내가 읽었던 일본 문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몇 권 정도였다. 내가 읽었던 문학 서적들은 서구권 작품이 대부분이다. 서구 문학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매우 다채롭다. 발생하는 사건도 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체와 스토리 덕에 서구 문학은 재미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자주 읽게 됐었다. 그 반면 지난 번 읽었던 나츠메 소세키 작가의 <마음>도 그랬지만 이번 <설국>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차분했다. 작품 전체에서 큰 일이 아예 벌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구 문학의 극적인 내용 전개에 익숙해있던 내게 조용한 일본 문학은 어색했다. 

 

 그 중에서도 <설국>은 조용한 분위기의 극치를 느끼게 했다. 처음엔 내용의 전개가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싶은 정도였다. 극적인 일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다보니 읽어내려가는 게 지루하기도 했다. 나랑 이 작품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을 통해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다고 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 작품으로 어떻게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 마음에 <설국>을 끝까지 읽게 됐다. <설국>을 완독한 뒤 느낀 감정은 ‘수십장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간 읽어 온 소설 중에 <설국>은 서정적인 소설로 단연 최고봉이었다. 

 

젊은 시절 가와바타 야스나리

 

2.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세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7월 오사카에서 태어난 일본의 소설가이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 <설국>의 첫 문장 -

 


위 문장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대표하는 문장이다. 그의 문장은 매우 유려하고 아름답다. 내가 <설국>을 읽으면서 점점 책에 빠지게 된 것도 그의 아름다운 필체 덕분이었다. 

 

그는 반자연주의 문학의 한 학파였던 신사조파란 학파에 들어가 「이즈의 문학(伊豆の踊子)」이란 작품으로 등단했다. 신사조파는 지식과 이성에 근거하여 작품을 쓰려했던 문학학파였다. 1918년 가을 일본의 이즈 지역을 여행하다가 떠돌이 무희를 만나 교류한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그의 첫 문학 작품인 「이즈의 문학(伊豆の踊子)」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번 독후감의 주제인 <설국>은 193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완성까지 무려 12년이나 걸린 작품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초기 문체는 왕조 문학과 불교 경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허무함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설국>에서는 허무함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그의 문체가 일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왜 갑자기 자신의 문체를 바꾸었을까? 

 

그가 일본의 미(美)를 묘사하는 문체로 방향 전환을 한 데에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원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를 받아들여 주변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다. 일본에는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발전된 모습에 매료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런 모습들은 마치 일본 고유의 것을 잃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설국>에서 그가 묘사한 일본의 모습은 외부의 오염된 현실이 전혀 틈입하지 않을 것 같은 고립된 세계의 표상이자 ‘일본인의 마음의 본질’로 이해되었다.

 

<설국>은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적 소설이다. <설국>에서 풍기는 일본의 정취는 이후 일본 문학 나아가 다양한 문화 활동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설국>의 마을 분위기와 같이 차분하고, 특별한 사건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런 예술, 문학적 컨텐츠들은 위력이 대단해서 보는 이들에게 그 나라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의 분위기 중엔 틀림없이 <설국>에서 묘사하는 차분함과 잔잔함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일본의 아름다움은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각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문학은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

<설국>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색하던 작품이 지금은 조금씩 읽히고, 감정이 와닿는다는 건 그만큼 나 역시 감정의 복잡함과 무력함을 배워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말없이 지나가는 순간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틈과 여백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설국>은 그런 여백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이번 독서는 마치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았다.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같기도 했다.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문학의 힘이란 그런 데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시대도, 나라의 경계도, 언어도 넘어서서 독자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해주는 것. <설국>은 그러한 문학의 힘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발휘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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