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류로 빚은 ‘한국다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 으로 패전 후 침체돼 있던 자국민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었듯, 우리에게도 세계 앞에 내세울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일본이 차분함과 잔잔함으로 자국의 미를 규정했다면, 한국의 미는 흥겨운 장단과 뜨거운 에너지에서 출발한다. 그 뿌리는 '풍류'이다. 삼국 시대부터 이어진 잔치 문화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DNA를 우리에게 심어 놓았다. 오늘날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 역시 이 풍류 정신이 현대적으로 변주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K-Culture, 전 세계를 춤추게 하다
BTS·블랙핑크 같은 K-Pop 아이돌은 영어권·비영어권을 가리지 않고 수억 명의 마음을 움직인다. 각국 팬들은 한국어 가사를 통째로 외우고 댄스 챌린지에 참여하며, ‘성지 순례’처럼 서울과 고향 도시를 찾아온다. BTS가 경복궁 근정전에서 펼친 라이브 무대, 장구·꽹과리 리듬을 녹여낸 노래 한 곡은 그 자체로 한국 전통과 현대 대중음악의 교차점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폭발력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겨울연가>에서 <오징어 게임>, <케이팝, 데몬헌터스>까지), 영화(<기생충>, <미나리>등)는 넷플릭스·칸·오스카를 잇따라 장식했고, 촬영지·소품·음식은 곧장 관광 상품으로 이어졌다. 세 장르의 공통분모는 결국 풍류를 현대적 스토리텔링과 기술로 승화해 ‘퀄리티’에 집착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3. 잔치 DNA가 만든 콘텐츠의 힘
사물놀이, 탈춤, 놀이패 등 예부터 우리는 '사람이 모이면, 흥을 돋우고, 먹고 마시며, 새로 배우는' 문화 안에서 살아왔다. 음력 8월 대보름 ‘가배’ 잔치처럼 밤새 노래·춤·음식이 끊이지 않는 전통이, 21세기에는 노래방·파티룸·버스 여행의 떼창 문화로 진화했다. 맛있는 음식·술·음악·춤이 한데 어우러지는 경험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김치·삼겹살·치킨처럼 한때 낯설다던 음식이 이제는 해외 미식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4. 지속 가능한 한국다움을 위해
코로나가 주춤한 뒤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는 가파르게 반등했고, 절반 이상이 '순수 휴가' 를 목적으로 입국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세계인의 호기심과 발걸음을 동시에 붙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한류의 저력은 ‘파도’가 아닌 ‘해류’가 되어야 한다. 풍류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형식·기술·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보존해야 한다.
가와바타의 <설국>이 일본의 미를 세계에 알린 기폭제였다면, 우리의 풍류는 이미 음악·영상·미식·패션 전 장르로 확장 중이다. 앞으로도 한국다움의 원천을 정성껏 지키고, 세련된 창작물로 재가공한다면, “문화 강국”이라는 위치는 일시적 타이틀이 아니라 장기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것은 소수 전문가만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빚어 가야 할 다음 세대의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