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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파리는 날마다 축제_헤밍웨이, 성공에 대한 단상

by Forever_Student 2025. 3. 22.

파리

1. 제목은 파리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자서전이었다.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엘리제 궁전과 같은 멋진 건축물부터 샹젤리제 거리, 퐁뇌프 다리, 몽마르트 언덕같은 멋진 장소들까지 멋진 것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가서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이 무수한 도시가 바로 파리이다. 그래서 파리는 내게 신비의 도시와도 같은 곳이다.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제목은 내게 헤밍웨이가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책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파리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줄 것만 같았다. 실상은파리에 대한 내용보다 헤밍웨이가 파리에 사는 동안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 정리한 자서전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A Moveable Feast’, 우리말로 번역하면 ‘움직이는 축제’이다. 파리에서의 생활을 담은 내용이 많아서 파리의 유명한 지역, 건축물보다 거리 구석구석에 대한 풍경 묘사가 잘 되어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러 다니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당시 파리의 식당이나 카페 문화가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다. 관련된 사진들도 함께 첨부되어 있어서 당시 파리시민들의 삶도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식문화, 파리에서의 생활 등이 상세히 나오기 때문에 파리에 대한 1920년대판 ‘Lonely Planet’ (여행참고서)와 같은 느낌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20대 시절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 지 알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의 20대는 참 힘든 시절이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작가로서 대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 시기였다. 그 때까지 헤밍웨이는 아직 작가로서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에게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 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은 신선했다. 우리나라의 위인들은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재능을 보이는 천재형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대단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헤밍웨이는 어릴 적부터 특출한 재능을 보인 사람이 아니었다.나는 그의 청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성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어네스트 헤밍웨이

2. 헤밍웨이의 단단하고 건조한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체이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의 작가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으로부터 시작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대표 3인방인 어네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중 문학사에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19세기 미국 최고의 작가로 마크 트웨인이 있다면 20세기에는 헤밍웨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나 역시 그의 저서 중 『노인과 바다』를 매년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읽을 정도로 좋아한다. ‘헤밍웨이 문체’라고 불리기도 하는 헤밍웨이 특유의 건조하고 단단한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체이다. 누군가는 뼈밖에 남지 않은 생선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이야기의 전개나 묘사가 가장 쉽게 이해되는 훌륭한 방식이다. 헤밍웨이 문체를 좋아하다보니,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 딱딱하다고들 하는데, 그 평가가 꽤 마음에 든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이름 ‘어네스트’를 싫어했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희극 『진지함의 중요성』에 등장하는 단순하면서 멍청한 영웅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불만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도 잡지 편집자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다.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단단한 문체는 학창시절부터 시작했던 기자 활동의 영향이 컸다. 1913년부터 1917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내 신문과 연감에 투고하고 편집하는 활동을 지속했다. 이 때 그는 당시 스포츠 기자들의 문체를 따라하고 익히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6개월간 <캔자스 시티 스타>에서 신참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곳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가이드가 헤밍웨이의 문체에 기본 바탕이 된다. 신문사에서 제공한 가이드는 다음과 같다. 

 

짧은 문장을 써라. 첫 단락은 짧게 써라. 힘있는 문장을 써라. 긍정적이되, 부정적이면 안 된다.

 

3. 성공에 관하여

헤밍웨이는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 작가이다. 퓰리처상, 노벨문학상과 같은 세계적인 명상을 가진 상을 수상하기도 한 대작가이다. 그런 그에게도 성공하기 전 경험한 무수한 실패의 과정이 존재했다. 특히 젊은 시절 파리에서의 회고록에서 그는 매우 가난했고, 자신의 원고를 모두 잃어버리는 등 뼈아픈 경험을 하기도 했다. 당시 기고했던 수많은 단편 소설들이 출판사들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했고,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뼈만 남은 생선’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정도면 ‘나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작가라는 직업을 포기할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가 활동을 이어갔고 결국 말년에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받고 세계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어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그에게 20세기 미국의 대표작가라는 타이틀을 주기도 했다. 젊은 시절 파리에서의 생활은 분명 충분히 가혹했고, 그 이후에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결국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고민해오던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부터 내가 생각하는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각자 ‘성공’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성공’은 충분한 돈을 확보하는 것일 것이다. 명예를 쌓는 것이 ‘성공’인 사람도 있다.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것이 ‘성공’인 사람도 있다. 이처럼 '성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즉, ‘성공’이란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 ‘성공’의 첫 번째 정의라면 ‘성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장 길을 걷다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성공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아니오’라고 할 것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라면 누군가는 이미 하고 있을 법한데, 왜 ‘성공’은 다른 것들과 달리 ‘성공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성공’에 대해 생각할 때 대개 현 시점의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는 것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공의 정의 중 가장 대표적인 정의가 풍부한 금전인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부(富)를 쌓는 것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성공’이란 ‘누구나 부를 쌓고 싶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 ‘부를 쌓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공’의 단면만 보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성공한 것도 부를 쌓는 것보다 자신의 글을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공의 부산물 중 하나를 부의 축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성공 = 부의 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공에는 중요한 속성이 있는데, 앞서 말한 ‘누구나 추구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목표 지향적인 것이 성공이다. 즉, 사람들이 각자 꿈꾸는 성공의 이미지에는 각자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과 같이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성공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므로 ‘성공’이란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달성/획득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성공’에 대한 정의를 조금 더 단순화시켜보자. ‘사람들이 달성 또는 획득하기 위해 추구하는 무언가’는 ‘목표’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다. 이제 ‘성공’에 대해 최종적인 정의를 내려보자. ‘성공’의 정의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성공은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4. 성공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앞서 정의한 것처럼 ‘성공’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목표는 성공의 필수 요소이다. 즉 ‘성공’을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하려면 제대로 된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목표는 무엇일까? 제대로 된 목표를 알아보기에 앞서, 목표란 무엇일까?

 

목표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상태’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뭔가 행동을 해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이루어낸 것들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된다. 달리 말하면 어떤 목표를 수립하는가에 따라 성공의 결과물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성공을 위해 제대로 된 목표를 수립해야하는 것이다. 목표에 대해 알았고, 제대로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올바른 목표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목표를 수립할 때 돈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10년 안에 100억을 벌겠다.’, ‘월 수입 1000만원을 달성하겠다.’와 같이 돈이 목표의 결과물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돈은 성공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이는 올바른 목표가 아니다. 성공을 위한 목표는 돈 이외의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글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다.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였다. 손흥민 선수는 어릴 적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하는 것을 꿈꿔왔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목표는 돈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모두 목표를 이루었을 때 돈이 부산물로 따라왔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목표는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거나,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인정받고, 수준에 도달하는 목표와 다른 유형의 목표도 있다. 『파리에서 김밥을 파는 여자』와 『웰씽킹』의 저자인 켈리 최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쓰고, ‘웰씽킹’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에게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가치를 제공하거나, 특정 분야에 최고가 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목표가 제대로 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은 나와 주변을 이롭게 한다. 김연아와 손흥민은 최고 수준의 피겨 스케이팅과 축구 실력을 통해 타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헤밍웨이는 수준 높은 작품을 집필함으로써 읽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제공했다. 켈리 최는 책과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관객, 독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이들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꺼이 비용을 투자한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투자는 이런 사람들과 기업들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연료가 되어준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투자가 바로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부산물인, ‘부(富)’이다. 

 

5. 목표를 달성하려면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올바른 목표를 수립했다면, 다음은 성공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야 한다. 성공의 결과물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올바른 목표를 수립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미지가 불확실하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나는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돈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삼았기 때문에 일단 제대로 된 목표는 수립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0점짜리 목표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어낼 수 있는 상태나 결과물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가 구체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일종의 지표이다. 내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지표가 불확실하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인생의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불확실한 지표만 가지고 있다면 매순간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올바른 목표가 있더라도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반면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선택의 순간마다 머뭇거림없이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의 기준은 ‘이 선택을 통해 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냐’이다.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기 때문에 후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체적인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목표의 구체적인 정도는 마치 우리가 그 결과물을 이미 얻었던 적이 있는 것처럼 상세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결과물을 얻었다’의 수준이다.

 

A는 자신의 목표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목표를 구체적으로 다시 수립하였다. “나는 2030년에 10,0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생 경험을 강의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강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목표를 수립하도록 돕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된다.”

 

이렇게 목표가 구체적으로 수립되면 그 다음은 행동이다. 목표가 구체적이면 행동해야 할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이는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쌓인 통찰 덕분이다. A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강의를 해보면 되는 것이다.

 

6.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도, 바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고 목표를 수립하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이미지가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이제 목표를 향해 행동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헤밍웨이는 이미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책이 끝날 때까지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파리에서의 7년 간의 생활동안 그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음에도 성공하지 못 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통해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는 수많은 작품 집필 활동과 실패 경험이 존재했다. 심지어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의 20대 헤밍웨이는 자신이 집필해둔 단편선들을 도둑맞기도 하고, 어렵게 쓴 작품들이 출판사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자 생활을 해야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거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은 작품을 통해 성공 체험을 함으로써 『노인과 바다』라는 역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선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수한 실패를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고, 크고 작은 성공체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실패에 관대할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점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보다 더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더욱 심하다. 최근 국가별 스타트업 기업들의 재창업 횟수를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평균 2.8회의 실패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기업인들은 평균 1.3회의 실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기업들이 한 번 실패 후 재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은 실패 후 재도전을 우리나라보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기업들이 탄생한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 이제는 실패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할 때이다. 현재 우리에게 실패는 ‘일을 잘못하여 그르치는 것’이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정의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실패하면 일은 그르치고 끝나게 된다.

 

이젠 실패를 어떤 일에 대한 결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일을 함에 있어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실패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목표하고 있는 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즉,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실패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면, 지금 내가 경험한 실패는 당연한 것이 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수많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들이 모두 실패가 된다. 그러면 실패한 것을 복기해서 더 나은 것으로 개선하면 그만이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실패는 실패한 것으로 끝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관점에서의 실패는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실패를 받아들이면 실패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나 역시 매일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앞선 A의 목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10,000명을 위한 강의를 하기 위해 야심차게 도전했던 첫 강의는 1명이 수강을 했고, 그마저도 완강하지 않고 중도 하차를 해버렸다. 첫 강의를 제대로 실패한 것이다. 만약 내가 실패를 결과론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목표를 포기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패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실패했는지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더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두 번째 강의에는 50명이 강의에 참여했고, 현재까지 총 다섯 번의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작년엔 첫 강의를 했던 곳에서 새로운 주제로 다시 강의해보자는 제안과 더불어 당시 했던 강의를 VOD로 만들어 볼 생각이 없는 지 제안이 오기도 했다. 결국 VOD도 만들었고, 약 40여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강의도 진행했다. 만약 내가 그 당시 실패했다고 주저앉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 이 과정 역시 첫 강의에서 주저앉았다면 절대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성공하기 위한 여정은 진행 중인 것이다.

 

실패와 함께 중요한 것은 ‘작은 성공’을 꾸준히 반복 체험하는 것이다. ‘작은 성공’은 얼마나 작은 것일까? 그야말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기.’같은 것이다. 매일 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성공의 크기를 늘려가면 된다. 앞선 내 이야기에서 첫 강의는 1명이 중도하차했지만, ‘첫 강의를 했다’는 관점에서 ‘작은 성공’을 경험한 것이다. 이런 작은 성공들은 내가 목표를 꾸준히 추구할 수 있도록 자존감, 자신감이라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실패를 통한 보완, 작은 성공 체험 및 축적을 통한 자존감과 자신감 확보를 통해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목표를 결국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