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프카 가족의 가족적이지 않은 분위기, 그 영향을 받은 프란츠 카프카의 가치관
프란츠 카프카는 대학시절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몇 번 접해본 적이 있는 작가였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변신’ 은 대학시절에도 도서관에 책을 빌려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인증 강사 과정의 도서 목록에서 이 책의 이름을 발견하였을 때 왠지 모르게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20대, 상아탑의 보호 아래 아직은 사회의 쓴 맛은 보지 못했던 시절에 읽었던 이 책의 느낌과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받은 느낌은 사뭇 달랐다. 샐러리맨이 되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생계를 꾸려가는 입장에서 본 그레고르의 이야기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프란츠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독어권 문학의 대문호로 불리고 예술적 감각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 중의 천재로 평가되는 사람이었다. 독일과 관련된 서적을 읽을 때면 유대인과 독일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때가 참 많은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유대인이면서 독어권 문학의 대문호로 불린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19세기부터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던 반유대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고, 구체적으론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말살정책)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일인들은 전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의 3분의 2를 학살했다. 유대인에게 독일인들은 이 사건으로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그런 관계 속에서 프란츠 카프카를 독문학 최대 문호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는 점만 봐도 카프카의 필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 지 느낄 수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죽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즐겼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게 된다. 부모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그는 전업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 생활과 창작 활동을 병행했다.
1914년 7월에는 덴마크에서 친구와 휴가를 보내는 동안 부모님께 독일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향을 묻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편지는 전달되지 못했고,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도 그의 작품들은 문학계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1915년엔 폰타네상을 수상했고, 20세기 독일 모더니즘의 대표작가 로베르트 무질이 카프카를 만나고 싶어 직접 프라하를 찾아오기도 했다. 독일을 여행하던 중엔 자신의 책 낭독회를 갖는 등 독일 문학계에선 주목받았던 작가였다.
프란츠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폐결핵으로 40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를 평생 괴롭혔던 그의 아버지는 프란츠 카프카보다 7년이나 더 살았다. 카프카는 죽을 때까지도 그를 괴롭혔던 아버지가 보여준 폭력성을 그의 저서에서 자주 언급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다행히 그의 친구는 원고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이를 세상에 알렸다.
2. 카프카는 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흉측한 벌레로 변신시켰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중 가장 흉측하고 해로운 존재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그레고르의 비극적인 결과는 예견되어 있었다. 작품의 도입부에 그는 자신이 해로운 벌레로 변해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시작한다. 카프카는 왜 그에게 비참한 운명을 겪게 했을까?
작가는 그레고르의 변신을 통해 가족 전체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한 사람이 느끼는 공포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레고르는 변신한 이후에도 집안의 수입과 생활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고 자신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자신이 벌레로 변했음에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돈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돈이 부족해지면 곧바로 삶이 불안정해진다. 그레고르처럼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겐 돈이 부족해지는 것은 가족 전체의 삶이 어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이유로 수 많은 사람들은 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경제 활동을 매일 지속한다. 직장인들은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를 위해, 장사를 하는 이들은 물건을 사러 올 사람들을 위해 각자의 시간을 소모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피로감에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회사로 출근해야 하고, 내 가게를 열어야 한다. 혹시라도 정말 몸이 아프거나 큰 사고를 통해 움직일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시장은 이를 배려해주지 않는다. 회사에 몸이 아파 잦은 결근을 하고, 그 결과 성과가 좋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성적표와 남들보다 떨어지는 연봉 인상율 뿐이다.
이런 자본주의 시장의 냉혹한 현실때문에 현대 사회인들은 내 몸보다 회사 출근이, 가게 오픈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고열을 앓고 있더라도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하고, 가게를 오픈한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던 사람들 중 버티지 못한 몇몇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레고르처럼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들과 개인 사업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가지 스트레스는 주인공 그레고르가 외판 사원으로 일하며 겪었던 스트레스와 다르지 않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음에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 집중했던 점은 내 몸이 아프거나 다쳐서 운신이 힘든 상황임에도 안정적인 가계 운영을 위해 회사에 출근하고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현대 사회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즉, 카프카는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신시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 그리고 경제 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모두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3. 그레테는 왜 그레고르에 대한 태도를 극단적으로 바꾸게 되었는가?
그레테는 작품 내에서 그레고르에 대한 태도가 가장 극단적으로 변한 인물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기 전, 그녀는 그레고르에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레고르에게 그녀는 각별한 존재였다. 이런 과거 때문인지 그레테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그레고르를 도와준다. 그의 부모는 그레고르에게 접근도 하지 못 했지만, 그레테는 먹을 것을 챙겨주고, 그레고르가 편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랬던 그녀가 작품 후반부에는 그레고르를 누구보다 더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레고르를 더 이상 오빠, 그레고르 등으로 부르지도 않았고 ‘그것’, ‘벌레’ 등으로 칭하기까지 한다.
그레테는 그레고르에 대한 태도를 가장 극단적으로 바꾼 인물이면서, 가족 내 역할이 가장 크게 변한 인물이다. 작품 초반부의 그녀는 철없는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그레고르가 벌어온 돈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즐겼다. 바이올린을 켰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러다녔고, 놀러 갈 때 입을 옷과 장신구 등을 사는 등 그 나이대 여자 아이라면 할 법한 활동을 했다.
그녀의 가족 내 역할도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 하게 되면서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레테가 자기 주도적으로 그레고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부모조차 그레고르에게 다가가지 못 했던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대 소녀가 그레고르를 위해 했던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은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다. 즉, 철없는 딸이었던 그녀가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여성이 된 것이었다. 이 때부터 그레테는 점점 자기 주도적인 여성으로 성장했던 것 같다.
그레테의 그레고르에 대한 태도는 집안 살림이 악화되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일을 시작했고, 어머니도 양장점에서 바느질 일을 하고 곧이어 그레테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점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으로 일을 해본 그레테는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점점 피로감이 누적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예전처럼 그레고르를 꼼꼼하게 관리하지 못 하게 된다. 예전처럼 접시에 담아 주는 것도 하지 않았고 발로 대충 밀어놓고 출근하기 바빴다. 저녁에 퇴근해서는 그의 방 청소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녀에게 그레고르를 관리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레테는 그레고르가 죽고나서야 자신이 그레고르에게 얼마나 무심했는 지 느끼게 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등과 배가 거의 붙어버릴 정도로 말라버린 그레고르의 시체를 보며 자신과 부모가 좀 더 신경썼다면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후회도 하루를 넘기지 못 했다. 파출부 할멈이 그레고르의 시체를 정리한 뒤 그녀에겐 그레고르라는 존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그레고르의 품을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된 것이었다.
카프카는 그레테의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가족원들의 역할, 한 개인이 사회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가족들의 건강이 최우선이었고, 함께 협동해서 일하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간의 정으로 끈끈하게 묶여 있었고, 한 사람이 힘들면 다른 한 사람이 협동해서 일을 나누어 했다.
농경 사회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지혜였다. 비록 신체 능력이 떨어져 농사 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 해도 과거 경험이 풍부하여 지금의 세대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했다. 나이가 들어 경제 활동 능력이 감소한 노인들도 경험과 지혜가 풍부하다면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노인들의 경험은 과거에 비하면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못 했다. 오히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 속도를 늦추는 방해 요인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벌어오는 능력이었기 때문에 경제 활동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전까지만 해도 나를 존중해주던 이들이 냉랭한 시선으로 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결국 그레테가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