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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시리즈/2화] 신곡_단테 : '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가치는 중세나 현대나 같다.'

by Forever_Student 202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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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만나는 장면에 대한 이미지
단테는 어둠 속을 헤매다 베르길리우스를 만난다.

1. 단테는 어두운 숲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지옥편, 제 1곡 1~3 >

「신곡」 은 단테가 어두운 숲에 홀로 남아 방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정치 활동에 참여하여 최고 행정관까지 올라가는 등 인생 최고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당쟁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다. 이후 그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데, 그 방황의 시간에 이 책을 집필했던 것이 도입부에 반영되어 있다. 

 

단테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올라가려는 길에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막기까지 한다. 마치 그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뒤 방황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표현한 것 같았다. 햇살이 비치는 곳은 자신의 고향 피렌체이고, 표범, 사자, 암늑대와 같은 위험한 존재들은 자신이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정적(政敵)들의 방해 행위를 의미하기도 하고, 낯선 곳을 방황하다가 만다는 다양한 위기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하는 동안,
내 눈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랜 침묵으로 인해 희미해 보였다..
< 지옥편, 제 1곡 61~63 >

 

어둠으로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던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단테를 지옥과 연옥에서 인도해주었던 베르길리우스였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곡」 에서는 단테가 당대 또는 그 이전 시대 유명한 이들에 대해 각각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볼 수 있다. 평가의 대상이 지옥, 연옥, 또는 천국 중 어느 곳에서 머물고 있는지를 통해 단테가 그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꽤 직설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안내자를 자청하고, 어두운 숲을 나가기 위해서는 지옥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면서 마지막 천국에서는 다른 이가 단테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천국에서 자신이 안내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그 곳의 법률을 어겨서 자신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들이 「신곡」 에서 자주 보여지는데, 단테는 천국으로 가려면 반드시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입구에 도착한 이미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문에 적힌 글귀를 읽고 있다.

 

2.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죄는 비슷하다.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있거든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 가거라.
파멸의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 없나니 오직 무긍만이 있을 뿐, 나는 무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지옥편, 제 3곡 1~9 >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을 여행하게 된 그는 지옥의 입구에서 지옥의 문에 적힌 위 글귀를 발견하게 된다.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라는 구절은 최신 영화나 문학 작품들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문구이다. 지옥에 온 영혼들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빼앗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지옥은 하늘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뒤집힌 탑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고, 1층부터 9층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층에는 특정 죄를 지은 이들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다. 마지막 9층에는 타천사 루시퍼가 머물고 있고, 루시퍼의 뒤를 통해 지옥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 지옥편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다. 지옥편에서 묘사된 지옥의 모습이 향후 기독교의 지옥에 대해 다루는 거의 모든 창작물들에 영향을 주었다. 지옥에는 단테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던 사람이나 그의 정치적 라이벌들도 많이 들어있다. 심지어 글을 쓰던 당시에 살아있었음에도 영혼은 이미 지옥에 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앞서 도입부에서 추방당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던 것처럼 이번 지옥편에서도 그는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을 출연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안정을 갖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옥편에서 나오는 층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층에서 다루고 있는 죄의 무게가 무겁다. 단테가 각 층별로 묘사한 죄와 형벌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죄를 더 중죄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중엔 현대 사회에서 생각하는 죄의 무게와 차이나는 부분들이 더러 있는데, 예를 들면 색욕이 식탐보다 더 높은 층에 있다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장 중죄로 생각했던 것은 국가, 가족, 친구, 스승, 그리고 은인을 배신하는 행위였다. 배신과 사기 등이 폭력이나 분노, 탐욕보다 더 무거운 죄라고 생각했던 것도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우리가 죄의 순서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죄들도 있는데, 1층인 림보, 그리고 6층의 이단 지옥이 이에 해당한다. 

 

지옥 1층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고대인이나 타종교인 등 기독교의 세례는 받지 않았으나 선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 가는 곳이다. 림보에는 주로 고대 현인들이 모여 있어서 아주 엄숙한 분위기이고, 어떤 형벌도 받지 않고 있어서 지옥이라기엔 매우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림보에 있는 이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형벌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를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명한 삶을 살았음에도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6층의 이단 지옥에는 당시 유럽의 기준에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와 사상을 믿고 퍼뜨렸던 이들이 머물러 있었다. 

 

6층에 머무르는 이들은 뜨거운 무덤 속에서 신음하고, 이단 종교나 사상에 대한 믿음이 깊을수록 열기의 강도가 높아졌다. 이 곳에 있던 이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인 에피쿠로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으나 십자군 원정 문제로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던 프리드리히 2세 등이 있다. 이처럼 그 인물이 살아 생전엔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으나 기독교의 교리와 맞지 않는 사상을 전파하거나, 기독교의 활동에 반대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옥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지옥의 배치를 통해 우리는 당대 사람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 지 알 수 있다.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와 중세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의 중요도를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의외였던 것은 당대 사람들에게도 이단이나,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것보다 배신과 사기와 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더 무거운 죄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배신과 사기는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3. 특정 종교나 사상을 배척하는 현상도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지옥에서 특이한 점은 림보라는 구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구역에는 기독교를 믿지는 않았으나 선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머물고 있었다. 여기에 머물고 있는 선한 영혼의 기준은 ‘기독교를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현명한 사람으로 불리었던’ 이들이다.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자들, 기독교가 국교가 아니었던 국가의 지도자들 등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을 몇 언급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툰,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와 같은 철학자들, 미케네의 공주 엘렉트라, 로마의 위대한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현대에도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는 호메로스, 호라티우스 등이 있었다. 이들이 더 깊은 지옥으로 가지 않았던 이유는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사상을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만약 에피쿠로스와 같이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는다는 등 기독교의 사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가차없이 더 깊은 지옥층에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기독교 외 사상을 배척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정 종교나 사상 외 다른 사상을 배척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극우 종교 단체나 사상 단체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 사상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배척한다. 이는 극우 단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자신의 정치성향, 종교관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은 다른 종교관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는 성향이 극에 달해 결국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유럽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죽었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소환으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1921년에 마지막 원정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십자군에 참여했던 기사단들이 1942년까지 단독 행동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약 400년에 걸친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간의 초장기 전쟁이다. 

 

십자군들에게 성지 탈환이라는 것은 명목상의 이유였고, 사실은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거나, 다른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원정이 지속될수록 십자군 원정대는 점점 부패해갔고, 나중엔 군인들이 아닌 일반 이슬람인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등 온갖 폐륜적인 일을 서슴치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십자군 원정이 오늘날에는 더이상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엔 종교 차이로 인한 문제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다른 국가의 국민들 간에 다툼뿐 아니라 같은 국가의 사람들 간에도 종교관의 차이로 인해 다툼이 발생한다.

 

종교관의 차이로 인한 문제는 이슬람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로 인한 갈등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당장 우리 주변에만 보더라도,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진 사람들이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단에 해당하는 죄이다. 이단자들을 제대로 된 길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믿는 종교를 강요한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편을 주는 것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이 성스러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단순 포교활동을 넘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를 아십니까?’라는 첫 인사로 유명한 전도사들이다. 증산도라는 신흥 종교에서 포교 활동을 위해 첫 인사로 활용하면서 유명해진 사례로, 남녀 2인조로 구성되어 길을 걷다 마주치는 행인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도록 설득한다. 이들은 집요하다. 상대방이 대화를 거부해도 끝까지 쫓아가서 말을 건다. 사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더 많은 신도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데 있다. 새로운 신도들을 세뇌시켜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돈을 바치게 만들고, 기존 신도들은 새로운 신도를 만든 횟수만큼 실적으로 인정받아 계급이 올라가고 돈을 번다. 

 

다행인 것은 SNS의 발달로 정보 공유가 용이해지면서, 그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보를 입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종교 범죄 피해를 사전에 막는 예방활동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종교 단체들로 인한 피해는 존재하고 있다. 나는 지옥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 지옥편의 각 층들은 현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 다음화 : 연옥 편에서 전하는 핵심 메시지 '용서를 통해 죄를 사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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